조금씩, 천천히 안녕
끝을 알고 조금씩 천천히 이별하는 마음은 어떨까요?
[내 머리속의 지우개]처럼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한 기억이 하나둘 지워져버리면, 남아있는 가족들의 슬픔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거라 생각됩니다.
어제 웃으며 이야기했던 얼굴이 이제는 서로 모르는 사람처럼 생경스럽게 대면한다면 얼마나 마음이 찢어질까요?
이 책, [조금씩, 천천히 안녕]은 인지증을 앓고 있는 쇼헤이와 그 가족들의 이야기를 통해 '잊는다'는 것, 그리고 가족의 의미를 담담하게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 참고로 치매와 인지증은 같은 말이며, 일본에서는 2004년말에 치매라는 용어를 인지증으로 바꿨다고 합니다.
치매라는 명칭이 모욕적이고, 차별적이라는 지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저도 올해 91세이신 할머니가 계신데요, 인지증에 걸리시진 않았지만 귀도 안들리시고 기억력도 많이 안좋아지셔서 책을 읽으면서 할머니 생각이 많이 났습니다.
가장 필요할 때 의지할 곳은 역시 가족이라는 말처럼 이 소설에서의 세자매는 너무 우애깊게 잘 지내는 모습을 보고 역시 사랑받고 자란 가족의 힘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엄마는 그걸 매일 했다는 거네."
"뭘?"
"아버지, 잠옷 벗어버리고, 환각 보고, 실금도 있고, 정말 힘들었어."
"밤에?"
"응, 밤에"
"내가 없어서 불안한가."
"평소에는 안 그래?"
"아냐, 늘 그런 편이야."
"대단하네, 엄마. 어떻게 그걸 혼자 다했어?"
"그럼, 새삼스럽게 뭐. 밤중에 세탁기를 세 번 돌리기도 했는걸." (P.255)
마지막 장면에서 다카시의 교장선생님이 인지증을 '긴 이별(a long goodbye)'이라고 부르는데, 작명이 참 공감이 가더라구요.
제목처럼 조금씩, 천천히 안녕하는 모습이 여운이 많이 남네요.
책을 다 읽고 영화도 감상했는데요
원작의 분위기와 상상력을 크게 느끼고 싶어서 일부러 책을 다 읽기 전까지 영화를 보지 않았습니다.
영화는 책의 기본 줄기를 헤치지 않으면서 약간의 수정을 했네요.
책 표지에 나오는 가족사진에서 알 수 있듯이 원래 세자매 중 둘째 나나가 빠지고, 마리의 아들도 다카시만 있는걸로 정리가 됐습니다.
영화에서 가장 감동적이었던 부분은
(원작에선 안나오지만) 아버지를 찾아 놀이동산으로 간 엄마와 두 딸들이 아버지를 향해 우산을 펼치던 장면.
그리고 그 딸들을 보며 활짝 웃는 아버지의 모습이었습니다.
기억이 잊혀지는 가운데 옛 추억을 떠올리며 가족들을 향한 사랑을 아버지의 환한 미소로 발견할 수 있었던 아름다운 장면이었네요.
(출처 : 영화 <조금씩, 천천히 안녕> 스틸 이미지)
인지증을 다룬 작품들 대부분이 어둡고 슬픈 분위기의 것이었는데, 실제로 겪어보니 웃음을 자아내는 순간들도 많았다는 작가의 말처럼 이 책은 시종일관 따뜻하고 밝은 느낌으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습니다.
억지로 슬픔을 끌어내려고 하지 않고 티격태격하지만 가족간의 따뜻한 사랑을 느낄 수 있는 에피소드 들이었습니다.
책으로 먼저 읽어보시고 영화도 한번 보시면 감동이 배가 될 것 같습니다.
가족간의 사랑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니 꼭 읽어 보시길 추천 드립니다.
[해당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