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과 비정상을 바라보는 시선 - 어둠의 속도

우선 이 책을 쓴 엘리자베스 문이라는 작가는 SF작가로 유명한데요, 그렇기에 이 책 역시도 미래를 배경으로 한 과학소설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흔히들 생각하는 과학적인 배경이나 우주가 등장하지 않는 순수문학에 가까운 내용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굉장히 철학적이고 읽고 나서도 여운이 많이 남는 소설입니다.
그래서 전형적인 SF소설을 생각하신다면 약간 당황하실 수도 있다는 점을 미리 말씀드리면서...
[어둠의 속도]는 자폐인인 주인공 루를 중심으로한 1인칭 시점으로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습니다.
약간은 느린 듯 하면서도 어느 순간 루의 시선과 생각을 따라 사건을 바라보게 됩니다.
처음에는 '자폐'라는 증상때문에 일반인(?)과는 다를것이라는 막연한 편견으로 시작했다가 루가 가진 특유의 재능과 생각들을 알고 난 뒤에는 저도 모르게 루를 응원하고 지지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자폐인의 심리를 자세히 들여다 볼 수 있었던 것은 작가 자신이 20여년 동안 자폐인인 아들을 키워오면서 겪었던 여러 경험들덕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뒤에 작가 인터뷰에서도 나오지만 책의 제목이자 전체를 관통하는 테마인 <어둠의 속도>는 아들인 마이클의 말에서 따왔다고 합니다.
어느 날, 아들이 들어와 문틀에 기대 물었어요.
"빛의 속도가 1초에 30만 킬로미터라면, 어둠의 속도는 얼마예요?"
제가 일상적인 답을 했죠.
"어둠에는 속도가 없단다."
그러자 아들이 말하더군요.
"더 빠를 수도 있잖아요. 먼저 존재했으니까요."
P.505
소설의 배경은 근미래로 임신중 자폐로 판단된 경우 치료가 가능한 시대입니다.
루는 치료를 받지 못하고 태어난 자폐인의 마지막 세대죠.
루를 비롯한 자폐인들은 패턴을 읽을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이 있기에 회사에서 특별한 업무에 배치되어 일을 하고 있습니다.
특별한 상황이니만큼 전용 주차장과 전용 체육관 등 특별 대우를 받고 있는데요,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상사인 크렌쇼씨는 이들에게 '정상화' 수술을 받아야 한다고 강요합니다.
이 수술을 받을경우 '정상인'이 될 수는 있지만 그 '정상인'이 지금까지 살아왔던 나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을지는 의문인데요, 이 선택의 기로앞에서 루는 어떤 선택을 할까요?
저는 루가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할 때 목사님과 나눴던 질문들이 무척이나 인상깊었습니다.
요한복음에 나왔던 베데스다 연못가에 누워 있던 남자의 이야기.
(책에는 실로암으로 나오는데 작가가 잘못 기재한 듯 합니다)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래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요 5:6)"
루는 이 질문에 심각한 고민에 빠집니다.
나는 낫고자 하는가? 무엇을 고치고 싶은가?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지금 모습 그대로를 사랑하신다고 하셨는데, 장애를 하나님이 부여하신 것이라 생각한다면 그냥 지금처럼 가만히 연못가에서 기다리는 것이 맞고, 바뀌어야 한다면 장애를 포함한 모든것이 하나님으로 부터 왔다고 믿지 않는 셈이 되니까요.
나는 누구이며, 또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관한 존재론적인 질문을 던지는 루를 보며 '정상인'들 보다 더 깊은 사고를 하는 모습에 저도 이 고민에 공감하게 되었습니다.

'정상'과 '비정상'의 기준이 무엇일까요?
'정상인'의 눈으로 '비정상인'은 무조건 교정되어야만 하는 것일까요?
자폐증과 상관없이 한사람의 '인간' 그 자체로서 소중한 존재일텐데요.
마지막 루의 선택을 보며 가지 않았던 다른 길을 갔더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도 해 보지만 어쨌든 루의 선택을 격하게 응원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마지막 책을 덮을 때까지 묵직한 질문을 던지며 길게 여운이 남는 작품이었네요.
왜 이 작품을 12년만에 다시 소개했는지도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P.S. 같이 보면 좋을 영화
클레어 데인즈 주연의 템플 그랜딘 교수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템플 그랜딘 (2010)]도 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해당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