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을 좋아하는 영화팬들이라면 꼭 읽어야 할 책이 나왔습니다.
놀란 감독이 참여한 첫 공식 도서이자, '첫 작품부터 현재까지, 놀란 감독의 영화와 비밀'이라는 부제를 달고 나왔네요.
영화 평론가 톰 숀이 4년 간 직접 놀란을 만나 그가 20년간 만든 10여 편의 영화를 한 권의 책에 모두 담았습니다.
감독이 직접 그린 미공개 스토리보드, 스케치, 사진, 스틸샷 등 200장이 넘는 컬러 시각자료와 함께 여태껏 밝혀지지 않았던 제작 뒷이야기, 숨겨진 의도와 고민 등 놀란이 오랫동안 벼려온 천재적인 사유를 책에 담았네요.
무려 528쪽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입니다.
저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을 [인썸니아]로 처음 접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알파치노가 나온 작품이어서 관심갖고 봤었는데요, 처음에는 별로 감흥이 없다가 이후 [메멘토]를 보고 나서 놀란 감독의 세계에 푹 빠지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놀란 감독의 작품이라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보는 팬이 되었죠.
이 책은 놀란 감독이 연출한 11개의 장편영화를 순서대로 각각 구조, 방향, 시간, 지각, 공간, 환상, 혼돈, 꿈, 혁명, 감정, 생존, 지식, 결말이라는 주제로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흔한 형태의 자서전은 아니지만 그의 어린시절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어떻게 영화적 상상력을 구체화 할 수 있었는지 그의 삶의 궤적을 하나하나 따라가다 보면 머리속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짐작할 수 있게 됩니다.
이 책이 놀란 감독을 다룬 여느 책들과 다른점이 있다면 단순히 그의 작품의 비하인드 스토리나 작품 해석의 수준을 뛰어넘어 감독이 생각하는 철학적 사유를 함께 고민하려는데 있습니다.
(머리말에 나오는 칸트의 방향정하기는 책이 끝날 때까지 해답을 찾고 있습니다 ^^)
영화를 만들기까지 고민했던 물음의 근원을 함께 찾아보며, 그 뿌리가 되는 영화, 철학, 사상, 음악 등 방대한 자료들을 살펴보고 창작자의 의도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깊이 고민하고 있습니다.
이 책을 보며 놀란 감독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은 그가 그냥 대중적이고 상업적인 오락영화를 만드는 감독이 아니라 영화를 통해 자신의 철학을 녹여낸다는 것입니다.
특히 음악과 사운드에 있어서 전문가 못지않은 식견을 갖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이 부분은 단편영화 [퀘이, 2015] 에서 그가 음악감독을 맡았다는 것으로 설명이 되겠네요.
[메멘토]가 시간의 방향을 가지고 자유자재로 놀았다면 20년이 지난 후 [테넷]에서는 정말 신과 시퀀스, 서브 플롯 자체를 '역방향'으로 돌리는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스토리 보다도 촬영을 어떻게 진행했을까가 더 궁금했는데 역시나 엄청난 고민과 시행착오들을 겪었다고 하네요.
'시나리오를 파고드는 사람이 많을수록, 시나리오에 대한 사람들의 이해력은 점점 더 떨어졌습니다.'
그의 경력은 관객과 주고받는 일종의 대화로 간주할 수도 있다.
그 대화는 상대가 던진 질문에 대한 대답을 들려주는 메아리처럼, 실시간으로 서로에게 반응하며 대응한다.
<메멘토>가 어리둥절하게 만든다면, <인썸니아>는 설명한다.
<다크 나이트>가 사람을 잔인하게 대한다면, <인셉션>과 <인터스텔라>는 감동적이다.
<덩케르크>가 많은 신규 팬들을 놀라게 만들었다면, <테넷>은 영향력 있는 모든 감독에게 조만간 닥칠 어떤 일을 확인해주는 듯 보였다.
p.475
책을 읽으며 그의 세계를 좀 더 명확하게 느끼고 싶어서 각각의 챕터를 읽기 전 영화를 다시 봤습니다.
(미행은 찾을 수가 없네요)
왜 그 장면이 나와야했는지, 이 장면에서 사용된 음악은 이런 느낌을 원했구나, 촬영하면서 감독이 고민했던 부분들이 하나하나 느껴져서 더 몰입 될 수 있었습니다.
[테넷]이후 차기작에 대한 정보는 얻을 수 없었지만 그의 모든 작품을 꾹꾹 눌러 담은 이 책은 가히 놀란에 대한 모든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끝으로 놀란이 아날로그를 고집하는 이유와 영화관에서 영화를 감상할때만 느낄 수 있는 경험과 체험에 깊이 공감하며, 오랜만에 큰 스크린과 고막을 직접 때리는 소리가 아닌 잔향과 공간에서 주는 울림을 느끼는 영화관으로 달려가야겠습니다.
[해당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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