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3학년 여름이었나...
남해안 어느 작은 섬마을로 수련회를 떠난 여름, 교회 대학부 회장직을 맡고 있었기에 더더욱 분주한 밤이었습니다.
준비한 모든 행사가 끝나고 모두 잠든 그때 잔잔한 밤바다를 바라보는데 갑자기 눈물이 터져 나왔습니다.
그동안 힘들었던 일들이 스쳐지나가며 저도 모르게 감정이 북받쳤나봅니다.
달빛에 반짝이던 바다와 옆에서 묵묵히 제 등을 토닥이던 친구가 없었다면 그 시기를 견뎌내기 힘들었을 것 같아요.
지금 우리는 위로가 필요한 시대를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코로나로 인한 물리적인 상황 때문이든 개인주의적인 시대적 환경 때문이든 서로에게 위로를 주고, 나 역시도 위로를 받고자 하는 욕구들이 있습니다.
<서툴지만, 결국엔 위로>는 위로가 필요한 우리들의 마음을 가만히 토닥여 주는 책입니다.
저자인 정화영은 다큐멘터리 방송 작가로 2013년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이달의 좋은 프로그램상'을 시작으로 2015년 KBS의 '우수제작진상'등을 수상하고, 2018년 <엄마의 봄날>과 2021년 <백 투 더 북스>로 휴스턴국제영화제 다큐멘터리 부문 백금상(Platinum Remi)을 수상했습니다.
방송 작가인 만큼 주변의 사소한 상황들에서 이야기를 발견하고 그들의 감정을 읽고 공감하며 때로는 위로가 필요한 순간을 잘 포착해 내는 능력이 뛰어난 작가인 것 같습니다.
사실 처음에 이 책을 읽고 싶었던 이유는 방송 작가가 바라보는 영화와 책 이야기에 관심이 있었는데, 책장을 넘길수록 그보다 사람의 이야기에 더 빠져들게 되었습니다.
이 책에 실린 20개의 에피소드들은 각각의 이야기들이 하나하나 빛나고 마음을 두드리는 이야기들인지라 읽을수록 더 깊이 공감하게 되고 위로를 얻게 되네요.
'내가 저 상황이라면 어땠을까?'
'나에게 위로를 받으러 온다면 난 어떤 위로를 전해 줄 수 있을까?'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읽어 나갔습니다.
한편으론 이렇게 다양한 경험과 위로의 순간을 맞이한 작가님이 놀랍기도 했습니다.
많은 이야기들 중에 특히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라면 61년생 신영숙씨 이야기였습니다.
영숙씨는 15살 때 '어머니의 권유'로 중학교를 중퇴하고 엄마와 외삼촌이 진 빚을 갚기 위해 소녀 노동자가 되었습니다.
더군다나 두 동생들의 학비도 그녀 몫이었죠.
치열한 삶이 지나고 이제 좀 편히 살아보나 싶었는데 어느날 치매에 걸린 노모가 찾아와 다시 엄마를 책임지는 인생이 시작되었습니다.
"엄마한테 물어 본 적 있으세요?"
"뭘요?"
"왜 나만 그랬냐고요. 왜 나만 학교 안 보내고 공장 보냈는지, 물어본 적 있으세요?"
"아이고 없어요. 외삼촌 한테는 대들고 싸운 적은 있는데 엄마한텐 못 물어봤어요."
"그래도 혹시 우리 방송하게 되면 한번 물어봐요. 어머님이 안 물어봐도 제작진이 물어볼 거 같아요. 괜찮으시죠?"
"그럼요. 물어보세요. 꼭 물어봐 주세요. 근데..."
"왜 걱정되세요?"
"그게... , 엄마가 치매라, 기억이나 할지 모르겠네요."
아픈 과거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결국, 새로운 기억을, 그것도 행복한 기억을 만드는 수 밖에 없다는 걸 알려주는 에피소드였습니다.
책을 다 읽고나서 느낀점은
'나에게도 이런 언니가 있었으면 좋겠다' 였습니다. (전 남자인데도 말이죠 ^^)
다른 사람들의 감정에 공감하고 그들의 어려움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진솔한 위로를 건넬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네요.
오늘 건넨 나의 진심어린 위로의 말 한마디, 친절한 행동 하나가 한 사람을 살릴 수 있다는 사실.
나이가 들수록 그런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돌아보는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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